
일본의 애니 라이센스, 제작 프로듀스 업무를 보는 입장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선라이즈라는 이름의 제작사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즐겨보시는 분이시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보셨을 제작사 일 겁니다. 다른 포스트에서도 소개드렸듯이 이 회사는 과거 부터 현재 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상을 대표할 브랜드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선라이즈에 관한 이야기는 워낙에 드릴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포스트를 보시면서 약간은 지루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순수한 정보 공유의 측면으로서 이해하시고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960년대 까지, 일본의 애니메이션 작품은 오로지 ' 데츠카 오사무 ' 라는 걸출한 선구자의 이름 하나로 대표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설립한 애니메이션 프로덕션이 ' 무시(蟲) 프로덕션 ' 인데, 이 프로덕션 내부에서 제작보조업무를 보던 요시이(吉井)가 1972년 퇴사하고 세운 회사가 선라이즈 라는 이름의 동화전문스튜디오 였고, 일개 스튜디오에서 출발 하여 지금은 글로벌 영상 컨텐츠 제작회사로 대성장을 거듭해 왔습니다.
선라이즈 라는 회사의 성격, 작품의 성격 등을 어느 정도 파악하려면 먼저 이 회사가 70년대 초반 어떤 분위기 속에서 창설되었고 작품의 제작 과정이 어떠했는 가를 간략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60년대 ' 아톰 ' 의 성공, ' 역도산 ' 의 활약(약간 뜬금없네요..^^) 등의 요소로 일본 내부에서 크게 요동치기 시작한 산업이 바로 TV 방송 산업입니다. 즉 이 시기에 TV에 내보낼 수 있는 ' 컨텐츠 ' 를 제작하는 제작업체가 물밀듯이 생겨나게 되고 ' 애니메이션 ' 역시 작지만 TV 프로그램 구성에 있어 고정적 위치를 확보하게 되면서 이를 제작하기 위한 회사가 하나 둘 씩 늘어나게 됩니다. 영화사인 TOEI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발족시켜 결국 ' 마징가 '라는 거대로봇물을 제작해 대 성공을 거두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70년대는 이른바 일본의 ' 베이비 붐 ' 세대로 대변될 만큼 어느 세대보다 ' 아이들 ' 이 TV 화면을 통해 ' 마술적인 현실과 미래 '를 꿈꾸게 되었다는 사회적 현실도 애니메이션 제작 붐을 부추긴 원인의 하나 입니다.
이 시기에 설립자 요시이에게 있어 큰 모티브를 제공한 애니메이션 두 작품이 나오게 되는데, 첫 째가 1965년 창립된 ' 타츠노코 프로덕션' 의 과학닌자대 갓챠맨(독수리 5형제) 시리즈가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술한 도에이 애니메이션의 ' 마징가 ' 시리즈가 그것입니다. 애니메이션의 창작 캐릭터적 측면에서 볼 때 이 두 작품의 캐릭터가 향후 일본 애니메이션에 끼친 영향은 한 권의 책으로도 써 낼 수 있을 만큼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만, 주제외의 논의에 해당하므로 여기선 일단 논외로 하고 , 요시이가 무시 프로덕션을 퇴사하고 새 회사를 설립하게 되는 과정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만 간략하게 이야기 드리도록 하죠 .
1963년 데츠카 오사무는 ' 아톰 ' 의 성공 이후 , 후속작들을 연이어 제작하여 방영하려는 계획을 갖고 ' 창작 ' 에 몰두하게 됩니다. 창작 애니메이션의 순수성을 유지한다는 그 취지 자체는 좋았지만, 아톰으로 인해 이미 브레이크가 풀린 일본 업계 내부의 상업적 성향은 여러 갈래의 가능성을 스스로 찾아가게 만들었고, 이 때부터 ' 만화가 '와 ' 애니메이션 제작 업체' 와의 저작 협력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계기를 만들어주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원작 창작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고 보다 많은 작품을 TV로 내보낼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어 버린 것이죠.
1972년에, 결국 후지 TV를 통해 나온 이 두 작품을 통해 좋은 원작만화 - 애니제작업체 의 협력 라인이 성공할 수 있다는 기틀을 확고히 구축하게 되면서 , 요시이 PD는 데츠카의 품을 떠나 선라이즈를 창립하게 됩니다.
당시 , 요시이가 데리고 있던 인력은 7명의 동화 애니메이터가 전부였고, 소에이(創映)라는 출판영상회사에서 제작하는 애니메이션에 외주 제작협력업체로서 그 첫테이프를 끊게 됩니다.(하제돈, 제로테스터, 용자라이덴 등의 작품 제작)
1975년 말, 하청 제작업체에 불과하던 선라이즈가 발 돋움 하게 된 계기는 동화의 질을 인정받아 도에이 애니메이션의 작품 제작에 참여하게 되면서 부터 입니다. 이 시기에 요시이는 지금의 선라이즈를 만든 장본인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인물들을 한 꺼번에 만나게 됩니다. 바로 ' 운명의 만남 ' 이죠.
스토리 창작자 야다테 하지메, 감독 토미노 요시유키, 작화감독 야스히코 요시카즈 입니다. 만약 도에이가 이 세 사람 중 한 사람 만이라도 자신들의 회사에 묶어두었더라도 결코 선라이즈에 업계 톱의 자리를 내주진 않았을 겁니다. 당시 도에이의 제작 담당자가 지금도 땅을 치면서 후회하고 있는 것은 마징가 Z의 원작자이자 만화가였던 ' 나가이 고 '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편애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람은 마징가의 성공 이후 당시 누구도 손댈 엄두를 내지 못했던 ' 성인용 만화 창작 ' 에 몰두를 하고 있었는데, 만화가의 편집증을 오판한 도에이 제작담당자는 다시금 ' 마징가 ' 와 같은 대박이 이 사람 손에서 나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죠.
조금 이해하시기 어려우실지 모르겠으나, 이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은 제작분담 체계가 제대로 확립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스토리, 연출, 그림 이라는 3분야를 모두 할 수 있는 사람이 업계 톱의 능력자로 인정을 받는 시대였습니다. 당연히 제작자 입장에선 3군데로 쏠릴 신경을 한 군데만 신경쓰면 되기 때문에 ' 나가이 고 '라는 ' 천재 작가' 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죠.
아무튼, 도에이의 편애로 인해 있는대로 불만을 갖고 있던 세 사람을 간단하게(?)포섭한 요시이는 1977년과 1978년에 ' 건담 '의 시험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 무적 초인 시리즈 ' 단보트 3와, 타이탄 3를 독자적으로 제작해 내놓게 됩니다.
단보트 3
타이탄 3' 갓챠맨 '의 5인 협력 시스템과 ' 마징가 '의 거대 로봇물을 그대로 합쳐 놓은 듯한 이 ' 쌍방 아류작 ' 은 큰 인기를 끌진 못하였으나 79년의 ' 건담 ' 이 정립되기 위한 귀중한 시험무대 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79년, 우주 세기가 시작되면서 선라이즈의 신화가 시작되죠.
- 다음으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