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 보면 문화 산업 분야의 어느 업계나 갖고 있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남들이 감히 흉내내기 조차 어려운 일을 어느 한 순간에, 그것도 갑작스럽게 해 내는 인물들이 탄생한다는 것이죠. 애니 업계에서는 1978년,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러했고 1979년에는 토미노 요시유키, 1987년엔 오토모 가츠히로 등이 각각 일본 애니메이션의 커다란 획을 그은 사람들입니다. 이후 약 16년간,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이 대표적인 세 거장의 어깨 위에서 파생된 장르들을 답습하기에 급급하였고, (물론 1995년의 반짝 중흥기도 있었습니다만)결국 그 결과는 2004년에 ,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악의 극장판 작품 3개가 개봉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 프로덕션 I.G- 이노센스
2. 스튜디오 지브리- 하울의 움직이는 성
3. 선라이즈 - 스팀 보이
일본의 3대 메이저 제작사가 각각 수십억엔의 제작비를 들여 내놓은 이 세 작품의 경합은 이미 1995년에 한 차례 먼저 벌여졌던 3파전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은 질들의 경쟁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1995년의 3파전을 잠깐 상기해 보죠.
1. 프로덕션 I.G -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
2. 스튜디오 지브리 - 귀를 기울이면
3. 선라이즈 - 메모리즈
아이러니칼 한 사실은 일본의 3대 메이저 제작사의 작품 , 그리고 에반게리온의 열풍으로 언론에서 거의 처음으로 재패니메이션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년도가 바로 1995년 이라는 겁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구미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공식적인 ' 브랜드 ' 가치를 획득하였으며 이후 이 3대 제작사들은 일본 국내 뿐만 아니라 구미 유럽에 수출할 수 있는 ' 작품의 세계화 ' 전략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죠.
이 세계화라는 코드를 풀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벽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구미와 유럽의 뿌리깊은 친 디즈니 정서입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일본의 애니메이션과는 성격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하나 부터 열까지 대립되지 않는 구석이 없을 정도로 판이한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고유한 특징만을 고집하여 세계 시장에 내 놓을 수가 없었죠. 각본의 구성부터 , 촬영 방식까지 디즈니 방식을 어느 정도 수용하지 않고선 시장에서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 사실엔 저 역시 공감합니다.)
그러나, 약 10년이 지난 후의 그 결과물인 2004년 개봉작품들은..눈뜨고 봐주기 어려울 정도로 조잡하고 일본 애니메이션이 7-80년대에 구축하여 놓은 작품의 ' 순수성 '을 엄청나게 훼손시켜 버렸습니다.
이 견해가 세대 차이가 아니냐는 반론에 있어선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싶습니다.
다음으로부터 다음 세대간의 문화적 코드의 차이는 분명 존재합니다. 적어도 7-80년대에 애니메이션 기획을 했던 사람들이 현재의 2000년대의 애니메이션 기획에 있어서도 누구나 인정하는 결론을 끌어내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기획자는 근본적으로 후에 ' 작품 ' 이라 부를 수 있는 ' 상품 '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지 , ' 자신들만의 색깔 '을 보여주기 위한 ' 상품' 또는 ' 돈 '을 위한 '상품' 을 만드는 것이 본연의 역할은 아닐 것입니다. 2004년의 세 ' 상품 '을 보고 있자면 도대체 이러한 애니메이션을 ' 누구 ' 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나 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갖게 됩니다. 제작된 애니메이션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 관객 ' 또는 '시청자' 입니다. 관객이나 시청자가 지금 세대에서 보기를 원하는 것, 대신 표현해 주길 원하는 것.. 이러한 것들이 무엇인가를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오로지 반디즈니 공감대를 이용해, 구미와 유럽의 ' 시장 ' 만을 노린 2004년의 3대 메이저 제작사 상품들은 그야말로 ' 주체 ' 인 관객들을 철저하게 우롱하는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 개인적으로 2004년에 나온 최고의 애니메이션을 꼽는다면 , 주저 없이 코믹스 웨이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를 꼽을 겁니다. 절 아시는 분들이라면 받은게 있으니 팔이 안으로 굽는게 아니냐 하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수십억엔을 무의미하게 사용한 위의 세 작품은 이 작품과 같은 단상에서 거론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YS라는 액션RPG로 유명한 (주)팔콤의 프로그래머 였습니다. 이후 회사를 다니다가 ' 그와 그녀의 고양이 '라는 5분짜리 1인제작 애니메이션을 내놓고 주목을 받게 되죠.. 이후 ' 별의 목소리 '로 일본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의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을 그야말로 ' 뻘쭘 ' 하게 만들어버린 젊은 신예 감독..
' 별의 목소리 '라는 30분짜리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면 1950년대 이후 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고 계속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던 애니메이션의 ' 조직적 제작 ' 을 완전히 무시하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혼자서 제작하지 않은 부분은 ' 음악 ' 한 분야 뿐인데, 이 마저도 담당인 텐몬씨에게 전부 위임하지 않고 ' 주제가의 가사 ' 까지 작사하였습니다.
< 별의 목소리 - 각 제작파트 담당자 >
원작, 기획, 시나리오, 콘티, 연출, 원화, 동화, 디지털 채색, 3D 렌더링, 배경, 성우(남주인공), 촬영, 주제가 가사 작사
그리고...감독 =======> 신카이 마코토
음악 ===> 텐 몬
ㅡ.ㅡ;
1인 제작의 한계를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등장인물이 단 3명 뿐이라는 것. 캐릭터 작화가 그다지 출중하지 못하다는 것 정도 입니다. 이 이외엔 그 어느 극장판 작품보다도 훌륭한 구성과 퀄리티를 보여준 작품입니다. (특히 빛의 마술사라 불릴 정도로 배경의 명암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능력은..지금 현재 이 사람을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제작사 사람들이 차마 이 사람 앞에선 창피스러워서, 칭찬도 쉽게 할 수가 없죠..
이 작업을 끝내고 신카이 감독은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미야자키나 오토모 가츠히로와 마찬가지로 원작, 각본, 콘티, 연출, 감독, 디지털 배경의 6분야만으로 참여 범위를 축소(?)시키고 작화파트에선 손을 떼게 됩니다. 그 결과물이 ' 구름의 저편 , 약속의 장소 ' 이죠.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 정적이면서도 관객을 자극하는 갈등 상황의 발전, 아름다운 음악, 멋진 엔딩..
뭐..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 장황한 글을 읽으시면서 혹시 이 작품을 아직 안보셨다면 꼭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제가 올해 (주)코리아 전시기획이라는 이벤트 기획사에 일하면서 귀중한 기회 하나를 얻었는데.. 그것이 바로 독립작가 지원심사 입니다. 기획서 1부에 5분짜리 시나리오와 컷트 구성을 포함,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면 심사 통과후 지원금을 받아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제도 입니다. 단 , 최종 심사를 통과한 사람은 그 때부터 계약 해지 까지 모든 제작물의 저작권을 코믹스 웨이브와 공동으로 갖게 되고 수익의 일부를 계약을 통해 나누게 되는 제도이죠.
이 제도의 두 번째 수혜자가 될지 어떨지는 두고봐야 하겠지만요.
아무튼 사업팀의 60여개 거래처 중 역시 귀중한 자리를 차지 하고 있는 ' 귀빈 ' 이며, 앞으로 이 신카이 마코토 라는 이름은 향후 20년간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에 있어 큰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천재적인 재능의 소유자 입니다.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해 마지 않습니다.
이상 두번째 포스트 코믹스웨이브-신카이 마코토 였습니다.